영화 시장 개방 : 80년대 초중반 1979년 대통령 암살과 쿠데타에 이은 신군부의
집권, 그리고 민주화 운동이라는 격랑 속에서 국제적으로는 시장 개방의 압력을 강하게 받았다.
1988년 열린 한미투자협상의 결과로 UIP를 비롯한 미국 헐리우드 스튜디오 5곳의 국내 지사가
설치되었다. 이전에는 국내 영화 제작 실적이 충분한 영화사들에게 해외 영화를 수입해 올 권리를 국가가 부여했다면
이제는 배급사가 극장을 확보하면 자국의 영화를 들여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랑과 영혼>(1990)이 서울에서만 96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으는 등 해외 영화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한국 영화는 제작이 위축되었다.
새로운 바람 : <양들의 침묵>(1991)처럼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스릴러
영화의 등장, <빽 투 더 퓨처>(1985, 1989, 1990)나 <쥬라기
공원>(1993)처럼 상상력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실현한 영화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 <인어공주>(1990),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라이온 킹>(1994), <토이
스토리>(1995)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애들이나 보는 만화”라는 관념이 깨졌다. 데이트를 하는 성인들과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애니메이션을 보러 극장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짧고 굵은 홍콩영화의 바람 : 1990년대 가장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영향은 홍콩영화의
강세이다.
당시 성룡, 주윤발, 유덕화, 왕조현, 장국영, 왕조위 등은 <영웅본색>(1986),
<천녀유혼>(1987), <폴리스스토리>(1988), <도신>(1989),
<비정성시>(1989)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며 국내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주로 도박이나 총격전 등을
소재로 한 이 시기의 홍콩 액션 영화를 홍콩 느와르라고 한다.
그러나 홍콩의 중국 반환(1997)이 예정된 상황에서 천안문 사태(1989)를 계기로 장국영이 캐나다로
국적을 바꾸는 등 배우들의 정신적 안정성이 흔들렸으며 한정된 수의 배우들이 다작을 하면서 힘이 빨리 빠졌다. 홍금보와
주성치 등이 코믹 액션을 앞세워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지만 <소림축구>(2002)등을 마지막으로 홍콩 영화는
과거의 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절치부심 한국영화 : 헐리우드와 홍콩영화에 치인 한국영화는 1990년대 개봉 편수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서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장군의 아들>(1990),
<서편제>(1993)를 연출한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스타 배우와 감독을 중심으로 관객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지속된 공세와 IMF 외환위기(1997)의 충격으로 영화 제작 편수는 최저 수준으로
줄어들었지만 <투캅스>(1993), <깡패수업>(1996), <할렐루야>(1997)등 코믹
영화의 박중훈, <은행나무 침대>(1996), <접속>(1997),
<넘버3>(1997), <초록물고기>(1997),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등
드라마의 한석규를 비롯해 고소영, 정우성, 전도연, 송강호, 박신양, 심은하, 최민식 등의 배우들이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지속적으로 키워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헐리우드의 대작들로 인해 전에 없는 관심이 영화에 쏠렸고, 한국의 영화인들이 수준 높은 작품을
제작해 이를 받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헐리우드에 대항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1990년대 말부터
회자되었으며 90년대 중반까지 적지 않았던 성인물이 끊기다시피 한 자리를 한국의 액션영화가 채워 나갔다.
멀티플렉스 시대 : 서울시 지하철 2호선 강변역 테크노마트에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CGV강변점이 개장했다(1998).
이전까지 영화관은 영화를 상영하는 기능만을 했다. 영화 표를 예매한 후 상영을 기다리며 근처 거리의 카페
등에 머무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보고 싶은 영화표를 구하지 못하면 아쉽게 발길을 돌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여러
개의 상영관을 갖추고 인기 있는 영화를 여러 개의 상영관에 배치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영화관람 뿐 아니라 휴식,
쇼핑, 식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헛걸음을 할 확률이 적었다.
친구끼리 만나는 날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일단 CGV 갈까?”라고 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
영화관은 더 많은 관객과 영화를 부르는 선순환을 시작했다.